중국 최대 영화촬영 기지, 헝디엔의 몰락
중국 저장성에 위치한 헝디엔은 한때 중국 영화산업의 심장이었습니다. 이 도시는 거대한 촬영 세트장들로 가득했고, 최전성기에는 수십 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촬영될 정도로 활기찼습니다. 옛 시대의 궁궐부터 현대적 거리까지, 다양한 시대 배경을 재현한 세트들이 도시 전체를 뒤덮었고, 배우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월세방에 살며 매일 오디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2026년 설날 이후, 헝디엔은 급격한 냉각기를 맞이했습니다. 한때 배우들의 전쟁터였던 이곳은 이제 실업자들의 절망이 쌓이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영화도시의 뒷면에는 중국 경제 전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237% 성장 후 찾아온 급격한 붕괴
2025년까지만 해도 헝디엔은 드라마 제작 붐을 누렸습니다. 전통 장편 드라마 신규 제작팀은 505개에 달했고, 핸드폰으로 시청하는 세로형 숏드라마 제작팀은 무려 4,160개가 활동했습니다. 2024년 대비 237%나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그만큼 이 산업의 성장 속도는 폭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 초부터 실사 촬영 숏드라마 분야에서 급격한 냉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했습니다. 한 단역 배우는 헝디엔에 온 지 보름이 지났지만 단 한 신만 촬영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곳은 들어올 때는 서서 들어오지만 나갈 때는 누워서 나간다"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시간당 1,000원, 무보수 촬영까지 등장
단역 배우들의 처우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간당 11위안을 받던 배우들이 올해는 9.8위안으로 삭감되었습니다. 어떤 제작팀은 하루 70위안, 한화로 약 15,000원만 지급합니다. 하루가 5시간이나 8시간이 아닙니다. 촬영이 길어지면 20시간까지도 하루로 간주됩니다. 이를 계산하면 시간당 페이는 1,000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무보수 촬영 제안까지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일부 제작팀은 "역할은 있지만 돈은 없다. 얼굴이라도 노출시키고 싶으면 무료로 해라"는 제안을 공공연히 합니다. 여름에 두꺼운 고대 의상을 입고 14시간에서 20시간 이상 대기하며 촬영해야 하는데, 그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I가 95% 이상을 장악한 시장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핵심에는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중국 인터넷 시청각 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6년 1분기에만 중국에서 공개된 숏드라마는 128,000편에 달했습니다. 이 중 122,000편, 즉 95% 이상이 AI로 제작된 드라마였습니다. 실제 배우가 아닌,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콘텐츠입니다.
AI 드라마는 준비 기간, 촬영 인력, 배우, 조명, 의상, 세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몇 명, 심지어 한 명이 컴퓨터로 명령어만 제대로 입력하면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제작 비용은 극히 낮고, 생산 속도는 빠릅니다. 전통적인 실사 촬영팀이 경쟁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비상식적 경쟁과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중국은 현재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습니다.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구직자는 넘쳐나면서 비상식적인 경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단역 배우 한 자리에 100명이 달려들면, 제작팀은 시급을 100원까지 낮춰도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밥을 먹기조차 힘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받기 위해, 혹은 제작팀이 제공하는 무료 식사를 위해 하루 종일 대기합니다.
한 배우는 "황상 제하"라는 한 마디 대사를 위해 수십 명이 오디션을 본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한 마디를 위해 하루 종일 대기하고, 그마저도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름 동안 한 신을 촬영해 2만 원을 벌었다 해도, 그 돈으로는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작팀도 무너지는 현장
현장의 참혹함은 배우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실사 촬영 제작팀은 70%에서 90%까지 급감했습니다. 작년 8월만 해도 하루 20팀 이상이 답사하던 자금성 세트장은 지금 텅 비어 있습니다. 30여 팀이 동시에 촬영하던 거리 세트장에도 사람이 없습니다. 배우가 넘쳐나고 제작팀이 사라진다는 것은, 실사 촬영이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촬영을 마친 배우들 중에는 계약서를 들고 와도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작팀은 "우리도 아직 수익배분금을 못 받았다"며 일당 지급을 거부합니다. 배우들은 반문합니다. "당신들이 돈을 많이 벌 때 우리에게 더 준 적이 있었나? 지금 못 번다고 일당을 안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끼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촬영 현장에서 제공되는 식사마저 열악합니다. 점심 도시락은 밥과 채소 반찬 네 종류뿐, 고기는 없습니다. 아침에는 딱딱한 밀가루빵인 만토와 짠지 몇 개가 전부입니다. 200명의 배우가 있는데 죽은 반 통만 제공되어 금방 동이 납니다. 배우들은 "영양을 위해서라도 고기 반찬 하나만 더 넣어달라"고 호소하지만, 제작팀은 "자본이 빠져나가 돈이 없다"고 답할 뿐입니다.
한 배우는 "꿈이 배우의 길이라면 그만두라고 권하지만, 꼭 가야겠다면 일단 밥부터 먹자"고 말했습니다. 꿈을 꾸기 위해서는 최소한 생존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지금 헝디엔에서는 그조차 어렵습니다.
AI는 흥행까지 장악했는가
그렇다면 AI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도 환영받고 있을까요? 데이터는 아직 아니라고 말합니다. 2026년 춘절 기간, 실사 숏드라마가 AI 작품보다 훨씬 적게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총 재생량은 AI 작품의 약 25배에 달했습니다. AI는 공급량을 장악했지만, 시청자의 감정적 몰입과 흥행까지 완전히 장악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위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제작 비용이 극히 낮은 AI 드라마는 조회수가 낮아도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반면 실사 드라마는 높은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므로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AI 기술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고, 시청자들의 거부감도 줄어들 것입니다.
한국 배우들도 긴장해야 할 때
중국 헝디엔의 상황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도 얼마든지 이러한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AI 기술로 한국 배우들의 얼굴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본인의 동의 없이 얼굴이 도용되어도 중국처럼 저작권 보호가 미흡한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렵습니다.
중국의 헝디엔은 배우들의 꿈이 좌절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AI는 일자리를 빼앗았고, 디플레이션은 임금을 끌어내렸으며, 과잉 공급은 인간의 존엄성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발전과 경제 구조가 맞물린 시대적 변화의 단면입니다. 우리는 이 변화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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