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사관이 제시한 역사의 종착역, 그 치명적 허구
인류는 태초부터 쉼 없이 투쟁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끝없는 발전의 종착지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19세기 카를 마르크스는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해 매우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가 물질, 즉 생산 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계급 투쟁의 연속이라고 주장하며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 발전 5단계설을 내놓았습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는 평등했던 원시 공산사회에서 출발하여 계급과 착취가 생겨난 고대 노예제 사회와 중세 봉건제 사회를 거쳐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극심한 내부 모순과 불평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붕괴하며, 억압받던 노동자 계급이 폭력 혁명을 일으켜 완벽한 평등을 이루는 공산주의 사회가 역사적 필연으로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가난과 착취에 신음하던 수많은 지식인과 노동자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약속의 결말이 수천만 명을 학살한 전체주의의 참극이었음을 우리는 이미 지난 세기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목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끔찍한 결말을 품고 있던 마르크스의 이론은 왜 당대 최고 지성인들의 눈에도 그토록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였을까요?
그 이유는 이 이론이 진정한 역사 발전의 공식을 교묘하게 모방한 왜곡된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가 보았던 역사의 단계들은 하늘의 섭리를 앞서 흉내 낸 무신론적 가짜 역사, 즉 원리형 비원리세계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피 묻은 모방품을 걷어내고, 하늘이 잃어버린 인류를 되찾기 위해 피눈물로 전개해 오신 진짜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추적해야 합니다.
복귀섭리로 본 역사 발전의 참된 단계
타락으로 인해 영적 무지와 육적 무지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은 멈추지 않고 섭리의 수레바퀴를 돌려왔습니다. 내적으로는 종교를 세워 이기적인 마음을 닦게 하셨고, 외적으로는 과학과 경제를 발전시켜 파괴된 만물 환경을 복구해 오셨습니다. 이 두 갈래의 발전을 바탕으로, 시대마다 의로운 중심인물을 세워 잃어버린 하늘편의 주권을 점진적으로 넓혀 오셨습니다.
제1단계 하늘편 씨족사회는 타락의 늪에 빠진 원시 공동사회가 분열했을 때, 하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순결한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신 것에서 시작됩니다.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70문도를 중심으로 핍박 속에서 기독교 씨족사회를 형성하며 새로운 구원의 닻을 올리셨습니다.
제2단계 하늘편 봉건사회는 씨족이 번성하여 부족이 되면서, 거센 사탄 세계의 침범을 막기 위해 튼튼한 영토와 강력한 주종 관계로 뭉친 방어선이 필요해진 시기입니다. 구약의 사사 시대나 신약 이후 중세 유럽의 기독교 봉건사회가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 백성들은 영주와 성직자에게 철저히 순종하며 사탄의 외적 침입을 막아내는 신앙적 결속력을 다졌습니다.
제3단계 하늘편 통일군주사회는 흩어진 작은 봉건 영지들을 통합하여 더 광대한 영토와 강력한 국가 주권을 세워,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온 세계가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완성하는 단계입니다. 구약시대 다윗과 솔로몬 왕으로 이어지는 통일 왕국시대나, 중세 교황 레오 3세가 카롤루스 대제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 이룩했던 8세기의 기독왕국시대가 바로 이 단계입니다. 만약 이때 왕과 교황이 하나 되어 하늘의 뜻을 온전히 이루었다면 인류는 그 기반 위에서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군주제의 타락과 아벨형 민주주의의 탄생
그러나 안타깝게도 통일왕국의 군주와 교황들은 세속적 권력의 탐욕에 눈이 멀어 섭리적 사명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메시아를 모시기 위해 애써 세워준 절대 왕정이, 오히려 백성들의 신앙과 자유를 짓밟고 권력을 독점하는 사탄적인 전제군주제로 흉측하게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부패한 왕조와 독재의 치하에서는 결코 인류를 해방할 참부모, 즉 메시아를 자유롭게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타락한 이 군주사회를 철저히 깨뜨리고, 국가의 주권을 백성 개개인에게 돌려주어 그들이 스스로의 양심과 자유의지로 다가올 메시아를 찾아 모실 수 있도록 섭리적인 새로운 제도를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민주주의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 혁명은 단순한 이권이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세속적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패한 가인적 군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피 흘려 싸운 아벨형 민주주의의 위대한 탄생이었습니다. 인류는 이 눈물겨운 민주주의의 터전 위에서 마침내 억압받지 않고 참부모의 진리를 듣고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천부적인 언론과 양심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 하늘편 사회주의의 열망
하지만 하늘의 구원 섭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달성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아벨형 민주주의는 독재자를 몰아내고 자유를 쟁취하는 데는 훌륭하게 성공했지만, 그 자유를 하나로 묶어줄 참된 중심, 즉 하늘의 심정을 잃어버렸기에 오늘날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혐오, 끝없는 당파 싸움의 온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이룩한 자본주의 역시 인류에게 거대한 물질적 부를 안겨주었으나, 이웃을 형제로 여기지 않는 탐욕 탓에 승자독식과 끔찍한 빈부격차의 지옥을 낳았습니다.
하늘의 따뜻한 심정의 눈으로 볼 때, 어느 한 자식은 부를 독점하여 호의호식하고 어느 자식은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현실은 결코 창조본연의 이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깊은 본심은 결국 정치적 자유를 넘어, 80억 인류 모두가 굶주림과 차별 없이 풍요를 누리는 경제적 평등 체제를 맹렬히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원리강론은 인류의 이 본심적 갈망이 도달해야 할 다음 단계를 가리켜 하늘편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이러한 이타적 본심이 깨어날 것을 미리 알고, 무신론적 유물론으로 포장된 가짜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를 앞질러 세워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것입니다.

최종 완결편: 공생·공영·공의의 도래
인류 역사는 가난했던 원시 공동사회로 퇴보하는 것도,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무한 경쟁에 머무르는 것도 아닙니다. 수천 년 역사의 모든 피 눈물 나는 투쟁이 마침내 도달해야 할 단 하나의 최종 목적지, 그것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하는 두익사상, 즉 하나님주의의 안착입니다. 종교와 과학,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 피 흘리며 발전해 온 역사의 수레바퀴는 마침내 참부모가 주창한 공생·공영·공의의 섭리적 비전 안에서 완전한 통일의 꽃을 피웁니다.
이 비전은 단순히 외적인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경제적 착취와 빈부격차를 하늘의 참사랑으로 녹여내어 만물이 본연의 주인을 찾아 생명력을 회복하는 경제적 조화, 즉 공생을 이루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던 투쟁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모든 국가와 백성이 형제애로 통치에 참여하는 정치적 화합, 즉 공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기주의와 타락성으로 얼룩진 인류의 도덕을 절대적인 위하는 삶으로 정화하여 윤리적 심정문화, 즉 공의를 이룩하는 여정입니다. 즉, 과거의 모든 낡은 체제가 품었던 선한 갈망들만을 섭리적 용광로에 녹여 역사 발전의 찬란한 종착역으로 빚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지상천국이 현실의 토양 위에 완전한 닻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섭리적인 마지막 고개가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이 만들어낸 가짜 평등의 세계, 무신론적 유물론으로 무장하고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 했던 공산주의, 즉 세계적 가인과의 우주적 최후 결전이었습니다. 이 하늘편의 이상세계가 안착하기 직전 참부모는 어떻게 붉은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세계를 지켜내시고, 나아가 그 원수들마저 칼이 아닌 참사랑의 진리로 품어 굴복시키셨는지, 그 위대하고도 숨 막히는 승공의 섭리적 서사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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