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왜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철학자와 신학자들을 괴롭혀온 난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3대 축복이라는 사랑의 설계도를 주셨다면, 오늘날 인류가 겪는 끔찍한 고통과 비극의 역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인류 최초의 사건, 타락(The Fall)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죄의 본질: 과녁을 벗어난 인간의 추락
신약성경에서 죄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 중 하나인 '하마르티아(hamartia)'는 궁술 용어에서 유래했습니다. 활을 쏘았으나 과녁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버린 화살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창조목적이라는 분명한 과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추락해버린 인간의 비극적 상황을 정확히 표현합니다.
또 다른 단어인 '오페일레마타(opheilemata)'는 경제 용어로 '빚' 또는 '부채'를 뜻합니다. 이는 절대 의존적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자 생명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피조물 주제에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임의로 살아가려는 오만함을 죄로 규정합니다. 결국 죄란 단순한 도덕적 실수나 규범 위반을 넘어서는 훨씬 근원적이고 파괴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녀를 위해 수백억 년 동안 준비해온 참사랑의 밥상을 걷어차고, 스스로 고아의 길을 선택하여 집을 나가버린 근원적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철학과 신학이 맞닥뜨린 선악의 역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날카로운 역설로 유일신 신앙을 공격했습니다. 그는 "신이 악을 막을 능력이 없으면 전능하지 않은 것이고, 의지가 없으면 악한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기독교 교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선의 결핍 상태일 뿐이라고 방어했습니다. 마치 벽에 난 구멍이 새로운 실체가 아니라 벽돌의 결여인 것처럼, 악은 선이 채워지면 자연히 사라진다는 논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이르렀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이 원죄(Original Sin)가 되어, 끔찍한 유전병처럼 생물학적 출산을 통해 후손에게 전달된다고 보았습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 역시 아담과 해와가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며 숨은 것을 선악의 판단 기준이 타락하여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게 된 존재 방식의 근본적 변형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원죄론 교리들도 치명적인 의문을 남겼습니다. 전 인류가 영원한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가 고작 과일 하나를 따먹은 대가란 말입니까. 또한 윤리적 행위로 지은 죄가 어떻게 생물학적 출산을 통해 유전병처럼 대대손손 핏줄을 타고 전달될 수 있습니까. 이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전통 신학은 뚜렷하고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통일원리가 밝히는 타락의 실체: 혈통적 유린
통일원리는 창세기 3장의 에덴동산 사건을 문자에 갇힌 동화나 신화가 아니라, 영적·육적 타락의 끔찍한 실체를 감춰둔 심오한 비유와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창조이상을 완성할 남성 아담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창조이상을 완성할 여성 해와를 상징하며, 뱀은 인간을 유혹한 천사장 루시엘을 의미합니다.
원리강론이 밝히는 죄의 뿌리는 과일을 따먹은 단순한 식욕의 문제나 지시를 어긴 불순종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뱀으로 상징된 천사장과 해와, 그리고 해와와 아담이 차례로 불륜한 혈연관계를 맺은 음란의 죄, 즉 사랑의 타락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거룩하고 순결하게 지켜져야 할 사랑의 성소가 사탄에게 유린당한 것입니다. 하늘부모님의 선한 혈통을 번식하여 지상천국을 세워야 할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 성장 기간에 천사장의 유혹에 빠져 사탄의 악한 혈통을 번식하게 된 우주적 비극입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상상해보십시오. 열 달을 품어 낳은 금쪽같은 자녀가 악한 납치범에게 속아 부모를 버리고 납치범의 자식으로 전락하여 그의 끔찍한 하수인이 되어버린 꼴입니다. 기독교의 오랜 딜레마였던 '죄가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이유'는 타락이 관념적 불순종이 아니라 다름 아닌 혈통적 유린이었기 때문입니다. 핏줄이 사탄의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곧 하늘부모님과의 생명적 연결 고리인 사랑의 탯줄이 완전히 끊어졌음을 의미합니다.
하늘부모님은 왜 타락을 막지 않으셨는가
가장 고통스러운 질문이 등장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의 타락 행위를 즉각 개입하여 막지 않으셨을까요. 사탄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독립적 악신이나 하나님과 대등한 경쟁자가 아닙니다. 사탄은 본래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었던 피조물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타락에 간섭하지 않으신 데에는 우주적 원칙을 지키기 위한 피눈물 나는 섭리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스스로 창조하신 원리적 존재와 그 원리적 행동만을 주관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비원리적인 타락 행위에 간섭하여 개입하신다면, 그것은 범죄 행위 자체에도 창조적 가치와 원리적 권위를 부여하는 심각한 모순을 낳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타락의 주범인 사탄을 또 다른 창조주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절대적 원칙을 지키고, 훗날 인간을 기계가 아닌 당신과 대등한 공동 창조주로 영광스럽게 세우기 위해, 하늘부모님은 살이 찢기는 통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녀의 타락을 지켜보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끊어진 탯줄을 다시 잇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기나긴 탕감복귀의 십자가를 홀로 묵묵히 짊어지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참부모를 통한 혈통 복귀의 필연성
타락으로 인해 초래된 성서적 죽음은 단순히 육신의 숨이 멎는 물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주관권에서 사탄의 악주관권으로 생명의 소속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끔찍한 혈통적 타락의 결과로 인류는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의 가정을 이루는 제2축복의 비전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에덴동산 밖에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은 하늘부모님의 품을 떠난 인류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끝없는 투쟁 역사의 비극적 서막이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의 참사랑 품에서는 누구나 공평하게 사랑을 나누어야 할 형제자매들이었으나, 타락 이후 사탄의 이기심을 상속받은 인간은 남의 것을 빼앗고 군림하는 야수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노동자를 착취하는 맹목적 자본주의나, 하나님을 철저히 부정하고 평등을 명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공산주의 모두 그 근원을 따져보면 사랑의 탯줄이 끊어져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들의 처절하고도 빗나간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윤리적 회개나 선행, 혹은 사회 제도를 뜯어고치는 정치적 혁명만으로는 우리가 일상에서 짓는 자범죄를 일부 씻어낼 수 있을 뿐, 혈통 가장 깊은 곳에 독사처럼 똬리를 튼 원죄의 뿌리를 온전히 뽑아낼 수는 없습니다.
끊어진 하늘부모님과의 탯줄을 다시 잇고, 사탄의 오염된 혈통을 하늘의 맑은 혈통으로 접붙여줄 거룩한 영적 수술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 19절에서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고백한 것처럼, 불순종한 첫 사람 아담을 대신하여 온전한 의를 이루실 제2의 아담, 곧 메시아 참부모가 이 땅에 반드시 오셔야만 했던 필연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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