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이 가져온 빛과 어둠
18세기 후반 영국의 하늘은 석탄 매연으로 검게 물들었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기계화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약속했습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이 만물을 주관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기계의 굉음 뒤에는 참혹한 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초기 자본가들은 값비싼 기계를 쉼 없이 가동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부속품처럼 착취했습니다. 7~8살 어린이들이 어두운 탄광과 방적 공장에서 하루 14~16시간씩 혹사당했습니다. 영양실조와 폐병으로 쓰러져 죽어가는 아이들의 비명은 자유방임주의라는 미명 아래 묻혀버렸습니다. 국가와 법은 오직 자본가의 사유재산만을 보호했을 뿐, 죽어가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은 외면했습니다. 인간이 사랑으로 만물을 주관해야 할 세상에서, 거꾸로 자본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배하는 비극이 펼쳐진 것입니다.

양심을 가진 자본가의 등장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던 잔혹한 시대에, 한 명의 특별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가난을 딛고 자수성가하여 20대에 이미 거물 자본가가 된 로버트 오웰(Robert Owen)입니다. 그는 성공한 방적 공장 사장이었지만, 그의 양심은 당대의 다른 자본가들과 달랐습니다.
자신의 공장에서 매연을 마시며 피를 토하고 쓰러져가는 어린 노동자들을 본 오웬의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그는 인간이 결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품고 있었습니다. 오웬은 책상머리에서 이상국가를 공상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막대한 자본과 경영 능력을 무기로 삼아, 노동자와 자본가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실체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뉴래너크, 참사랑 경제의 실험장
1800년, 오웬은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계곡에 자리한 뉴래너크(New Lanark) 방적 공장 마을을 인수했습니다. 그가 시작한 개혁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10세 이하 어린이들의 공장 노동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노동 시간은 하루 10시간 반으로 대폭 줄였고, 노동자들에게 깨끗하고 쾌적한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오물로 뒤덮였던 거리는 깨끗이 정리되었고, 마을 한가운데에는 협동조합 성격의 상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싼값에 질 좋은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었고, 그 수익금은 모두 마을의 복지와 의료에 환원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교육에 대한 그의 헌신이었습니다.
오웬은 세계 최초로 공장 안에 유치원과 학교를 겸비한 '성격 형성 신학원'을 설립했습니다.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이제 밤마다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세계 지리와 역사를 배우며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자본가들은 "곧 파산할 미친 짓"이라며 조롱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공생 경제가 증명한 기적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 대접을 받게 된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헌신했습니다. 도둑질과 폭력, 알코올 중독이 사라진 뉴래너크 공장은 영국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고 수익성이 뛰어난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할 때 경제적 효율성마저 극대화된다는 진리가 경영 현장에서 완벽하게 실현된 순간이었습니다.
오웬의 뉴래너크 실험은 훗날 마르크스주의의 폭력적 혁명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제시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철천지원수로 규정하며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선동했지만, 오웬은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자본가 스스로가 내면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형제애를 발휘하여 자발적으로 부를 나누었을 때, 노동자와 자본가가 함께 번영할 수 있음을 실제로 증명했습니다.

뉴하모니의 좌절이 남긴 교훈
영국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오웬은 기득권 세력과의 마찰로 개혁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825년,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미국 인디애나주에 뉴하모니(New Harmony)라는 공동체를 건설했습니다. 사유재산을 완전히 폐지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일하고 나누는 완벽한 이상 사회를 세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벅찬 기대로 출발했던 뉴하모니는 불과 3년 만에 내부 분열로 실패하며 공중분해되었습니다. 오웬의 철학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성격과 도덕성이 오직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극단적인 환경결정론을 신봉했습니다. 좋은 교육과 평등 제도만 있으면 인간은 누구나 선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를 이성을 마비시키는 미신으로 배척하고 무신론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환경 개선만으로는 씻어낼 수 없는 이기심과 교만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신앙과 참사랑이라는 영적 구심점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숨겨둔 이기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일은 서로에게 미루고, 능력 있는 자들은 보상이 같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떠나버렸습니다. 평등이라는 제도를 묶어둘 영적 닻이 무너지자, 거대한 공동체는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지상천국을 향한 귀중한 이정표
오웬의 뉴하모니 실험은 재정적 파산으로 끝났지만, 그의 치열했던 생애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첫째, 자본 그 자체는 결코 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탐욕스러운 주인을 만나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흉기가 되지만, 참사랑의 주인을 만나면 수많은 형제를 살리고 미래를 교육하는 생명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뉴래너크는 이를 역사 속에 눈부시게 증명했습니다.
둘째, 아무리 완벽한 환경과 경제 평등 제도를 갖추어도, 구성원들의 마음 깊은 곳에 신앙과 심정 문화가 세워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웬이 자신의 막대한 부와 땀방울을 바쳐 현실의 땅 위에 이상향을 세우려 했던 시도는 비록 절반의 성공이었으나 거룩한 희생이었습니다.
이제 인류는 오웬의 실패를 거울삼아, 경제적 개혁과 영적 신앙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잔혹한 폭주를 막기 위해 일어선 신앙인들의 움직임, 그것이 바로 기독교 사회주의의 눈물겨운 발자취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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