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에 엄청난 부를 가져왔지만, 그 이면에는 참혹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런던과 파리의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매연 아래, 수많은 노동자들이 하루 16시간씩 기계처럼 일하다 쓰러져갔습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들의 고통을 위로해야 할 종교마저 자본가들과 손잡고 "가난은 하나님의 뜻이니 참고 견디라"는 위선적인 설교를 일삼았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카를 마르크스라는 사상가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며 냉소를 던지고, 내세의 천국 대신 지금 당장 쇠사슬을 끊고 일어서라고 외쳤습니다. 자본가를 타도하고 사유재산을 폐지하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완벽한 평등사회가 도래한다는 그의 선언은, 굶주린 민중들에게 어떤 복음보다 강렬한 구원의 메시지로 들렸습니다.

훔쳐진 천국의 설계도, 원리형 비원리세계
공산주의는 왜 그토록 빠르게 전 세계 절반을 붉게 물들일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공산주의가 제시한 이상사회의 모습이 하나님이 인류에게 약속하신 창조본연의 이상세계와 겉모습이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통일원리에서는 이를 '원리형 비원리세계'라고 부릅니다.
완성된 지상천국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온 인류가 한 가족이 되어 만물을 공동 소유하고, 특권 계급 없이 함께 번영하는 공생·공영·공의의 세계입니다. 공산주의는 바로 이 청사진을 교묘하게 베껴 사유재산 철폐, 계급 없는 평등사회, 모두를 위한 국가를 내세웠습니다. 천국의 외적 구조만 완벽하게 흉내 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붉은 포장 안에는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도, 진리도, 참사랑도 모두 빠져 있었습니다. 사탄은 복귀섭리의 때가 무르익어 하늘부모님 편의 실체적 지상천국이 세워지려 하자, 늘 그래왔듯 한 발 앞질러 천국의 설계도를 훔쳐 가짜 천국을 먼저 내놓았던 것입니다.
사랑의 자리를 차지한 증오와 폭력
하나님의 원리적 이상세계는 참사랑이라는 자발적이고 뜨거운 심정을 바탕으로 부를 나눕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듯,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참사랑의 중심이 확고할 때 비로소 타인을 위해 내 것을 기꺼이 양보하는 진정한 수평적 평등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는 이 절대적인 수직적 중심인 하나님을 처형해 버렸습니다. 우주의 참부모를 제거하고 남은 형제들끼리 칼을 들고 재산을 나누겠다는 패륜적 선언이었습니다. 사랑의 구심점이 사라진 텅 빈 자리를 공산주의는 무엇으로 채웠을까요? 바로 맹렬한 증오심과 계급투쟁이었습니다.
그들은 평등을 이루기 위해 자본가와 지주를 타협할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정당화했습니다. 사랑과 자발적 양보가 아니라 피투성이 칼과 총구의 위협으로 재산을 빼앗아 국가가 강제로 분배하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거룩한 자리를 '당'과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이 대신 차지했고, 그 권력은 결국 전 인민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전체주의 독재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영혼 없는 기계로 전락한 인간
공산주의 참극의 가장 치명적인 뿌리는 변증법적 유물론입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을 단백질과 물질의 화학 결합물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나 사후세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인간을 밥을 먹고 움직이는 고깃덩어리나 국가 생산을 위한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이 사상 아래서, 칸트가 필사적으로 지켜냈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는 철저히 말살되었습니다. 영혼이 없는 물질적 존재에게 양심의 자유나 신앙의 자유는 필요 없었습니다. 고장 난 기계를 폐기 처분하듯, 이 유물론적 인간관은 국가 목적을 위해 수천만 명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짓밟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괴물을 역사 속에 탄생시켰습니다.
피로 물든 공산주의 실험의 참상
공산주의가 끔찍한 대학살로 귀결된 것은 일부 독재자의 성격 결함이나 단순한 정책 실패 때문이 아닙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들의 사상 자체에 피비린내 나는 폭력성이 유전자처럼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급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에 방해가 되는 부르주아, 지식인, 종교인들을 인간이 아닌 청소해야 할 쓰레기로 취급했습니다. 1917년 혁명 이후 소련의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농민 400만 명을 아사시킨 홀로도모르를 일으켰고, 반대파 수백만 명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내 처형했습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으로 4천만 명이 넘는 자국민을 굶어 죽게 만들었으며, 문화대혁명을 통해 수백만의 지식인과 종교인을 홍위병의 몽둥이 아래 학살했습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은 안경을 썼거나 손이 부드럽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200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참극을 빚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3대 세습 정권 역시 수십만 명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고 수백만 명을 굶어 죽게 만들면서도 자신들을 우상화했습니다. 평등의 이름으로 포장된 이 원리의 왜곡된 모조품은 20세기 한 세기 동안에만 1억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지옥의 제단이 되었습니다.

우주적 분열과 하늘부모님의 애통함
공산주의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수많은 나라를 집어삼키자,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두 진영으로 갈라졌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신앙을 수호하려는 민주주의 진영과, 폭력을 통해서라도 무신론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때려죽였던 비극이, 수천 년의 세월을 거쳐 공산 진영과 민주 진영이라는 거대한 핵무장 블록으로 나뉘어 정면충돌하는 섭리적 최종전, 즉 냉전의 서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광기 속에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늘부모님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된 공산주의 사상에 속아 넘어간 자들도, 자본주의의 타락한 이기심에 물든 자들도 모두 애지중지하는 당신의 피붙이요 눈물겨운 자식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념이라는 붉은 괴물에 사로잡혀 형제끼리 총구를 겨누고 서로를 악마라 부르며 죽어가는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주의 부모이신 하늘부모님은 또 한 번 가슴을 치며 처절한 피눈물을 흘리셔야만 했습니다. 인류는 이제 붉은 괴물의 확산을 막고 자본주의의 병든 탐욕을 치유하기 위해, 사상적·제도적 방어선을 구축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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