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경전이 없기에 종교는 싸운다
1985년 11월 15일, 미국 뉴저지의 한 호텔 회의실에 전례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성경, 꾸란, 베다, 불경, 논어, 탈무드가 나란히 놓였습니다. 서로 다른 신을 향해 씌어진 책들이 같은 공간에서 호흡했습니다. 국제종교재단이 주최한 세계종교의회 창립총회였습니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유대교, 유교, 신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7일간 모여 하나의 질문을 놓고 토론했습니다. 모든 종교의 경전에서 공통으로 담긴 진리를 뽑아 하나의 선집을 만들 수 있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학술적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문선명 선생이 오랫동안 품어온 진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종교들이 싸우는 것은 하나의 경전이 없기 때문이다." 각 종교는 자기 경전만을 유일한 진리로 여기고, 다른 종교의 경전은 읽지 않습니다. 읽지 않으니 모르고, 모르니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니 공격합니다. 해법은 명확했습니다. 읽게 하는 것, 그리고 읽게 하려면 손에 들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필요했습니다.

1985년 뉴저지 회의가 혁명적이었던 이유
역사적으로 종교 경전들은 경쟁 관계였습니다. 기독교는 구약을 완성됐다고 보고, 이슬람은 성경이 변질됐다고 말합니다. 힌두교의 다신론적 세계관은 유일신 전통과 충돌하고, 불교는 신 개념 자체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이 경전들을 나란히 놓는다는 것은 수천 년간 쌓인 긴장을 한 자리에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문선명 선생은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경전 편찬의 정신적 기초를 명확히 했습니다. "본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종파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지엽적인 교리이론에 얽매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민족이나 피부색, 국가나 문화 전통, 동서양의 벽도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종단 간의 대화와 화합을 통하여 평화로운 하나의 이상세계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경전 편찬의 신학적 토대였습니다.
26년의 여정,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쌓인 결과
세계경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1966년부터 1991년까지 26년에 걸친 실천과 축적의 결과였습니다. 뿌리는 1950년대 한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6년 서울에서 통일교, 장로교, 감리교가 연합부흥회를 열었고, 교파 간 화합의 첫 공식 기구가 창설됐습니다. 1970년대에는 불교, 유교, 기독교, 천도교 등 7대 종교와 공식 연대를 맺으며 초종교 운동의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1983년 뉴욕에서 국제종교재단이 창설되면서 세계경전 편찬의 공식 기반이 마련됐고, 1985년 뉴저지 회의에서 편찬이 결의됐습니다. 이후 1985년부터 1991년까지 국제 공동회의가 4회 개최됐고, 세계 각지의 종교 학자와 문헌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1991년 마침내 세계경전 영문판이 출간됐습니다.
영문판 세계경전에 수록된 종교 전통은 27개에 달합니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유교, 도교의 5대 종교를 비롯하여 유대교, 자이나교, 시크교, 신도, 조로아스터교, 바하이교, 아프리카 전통종교, 미주 원주민 종교, 마오리 전통종교 등이 포함됐습니다. 인용된 경전 수는 264가지에 이릅니다. 편집자문위원으로는 비교종교학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니니안 스마트 교수와 휴스턴 스미스 교수를 필두로 총 40인의 종교 문헌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한문,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 각 종교 경전의 원전 언어를 해독하고, 경문 선정과 편집 과정에서 전문성을 검증했습니다.

다양성은 필연이지만 갈등은 불필요하다
세계경전 편찬의 신학적 동기를 이해하려면 하나의 진단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어느 한 종교가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변하는 일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종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견해들은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이 문장이 세계경전의 존재 이유입니다.
종교의 다양성은 필연입니다. 각 종교가 신의 다른 측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등은 불필요합니다. 그 다양성을 이해하면 갈등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경전은 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진성배 선문대 교수는 세계경전의 편찬 목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개별 종교의 절대적 신념이나 유일하다고 믿는 신앙형태를 양보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한 존경과 관용을 고취하여 자신의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종교 본래의 보편적 메시지를 공유하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계경전은 자기 종교를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자기 종교를 더 깊게 만드는 책입니다.
한국에서의 두 번째 탄생, 1994년 한글판
영문판에 이어 1992년 한국어 번역이 시작됐고, 1994년 5월 1일 한글판 세계경전이 출판됐습니다. 한글판 편찬 과정은 영문판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습니다. 번역자 선정 기준이 세 가지였습니다. 해당 종교의 깊은 이해, 경전 원전 숙지, 영어와 한국어 모두의 능숙한 구사였습니다. 영어 번역에만 의존하면 이중 오역이 발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글판 세계경전에는 한국의 9개 종단 대표자들의 추천이 실렸습니다. 한국불교 태고종, 대한예수교장로회 연합총회, 한국 이슬람교, 성균관, 대종교, 천도교, 증산교 본부,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국종교협의회가 추천 서명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다종교 공존 전통이 세계경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의 증거였습니다.
세계경전이 남긴 질문
세계경전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열린 질문입니다. 당신은 자기 종교의 경전 외에 다른 종교의 경전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27개 종교 전통을 동등하게 배치했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떻게 느껴집니까? 어느 한 종교도 신을 완전하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전제에 동의합니까?
26년의 여정이 보여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세계경전은 연구실의 산물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실천과 만남이 쌓여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한국에서 교파 간 화합운동으로 시작해서, 7대 종교 간 연대로 확장되고, 마침내 전 세계 27개 종교 전통의 경문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으로 완성됐습니다. 읽지 않으니 모르고, 모르니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니 공격한다는 진단에서 시작된 이 책은, 읽게 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라는 믿음의 결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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