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완전한 평화와 평등의 공동체를 꿈꾸어 왔습니다.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인류가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공생·공영·공의의 세계는 단순한 철학적 이상이 아니라, 인간 본심 깊은 곳에 새겨진 강렬한 영적 갈망입니다. 실제로 근현대사에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와 폭력적인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참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려 했던 눈물겨운 실험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비록 완전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공생·공영·공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위대한 맹아였습니다.
사막에 세운 평등의 꿈, 키부츠의 빛과 그림자
20세기 초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세운 집단 농장 공동체 키부츠는 공생 경제의 가장 철저한 실험이었습니다. 척박한 사막을 개간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원칙을 실현했습니다. 사유재산을 전면 폐지하고 자녀 양육과 교육을 공동체가 전담했으며,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계급 없는 평등 사회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초기 키부츠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형제애적 연대를 통해 엄청난 경제적 성공과 국가 재건의 기적을 일구어 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뼈아픈 위기에 봉착합니다. 이들의 평등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영성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시온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인간 중심 이념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대가 교체되고 이스라엘 사회가 자본주의로 급격히 편입되자, 영적 동력을 상실한 후손들은 이기심과 개인주의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오늘날 대다수 키부츠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기업화되는 등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는 절대 중심이 없는 제도적 공생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초대 교회의 영성을 되살린 브루더호프
키부츠의 세속화가 보여준 한계를 영적으로 극복해 낸 곳이 바로 기독교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브루더호프 공동체입니다. 1920년 독일에서 에버하르트 아놀트에 의해 시작된 이들은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초대 교회의 절대적 사랑을 현실에서 그대로 살아내고자 했습니다.
브루더호프는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하며 자동차부터 수입까지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이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 신앙입니다. 특히 브루더호프는 현대 사회의 이혼과 성적 타락을 철저히 배격하고, 남녀의 순결과 평생의 헌신을 약속하는 가정을 공동체의 가장 거룩한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매일 저녁 모여 하늘을 찬양하며 늙고 병든 형제 자매를 끝까지 책임지는 이들의 모습은 참사랑이 일상화된 심정문화세계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영적 오아시스 역시 섭리적 한계를 지닙니다. 이들은 폭력적인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외부 세계와 철저히 선을 긋고 고립된 평화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뜻은 깊은 산속에 소수 의인들만의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80억 인류 전체의 구조적 죄악을 깨부수고 온 세상을 천일국으로 변혁시키는 폭발적인 구원 섭리에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증명된 연대의 힘, 몬드라곤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의 한복판에서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기적입니다.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에 의해 설립된 몬드라곤은 오늘날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의 협동조합으로 성장했습니다.
이곳은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주식회사와 달리 인간이 자본을 주관합니다. 최고 경영자와 말단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극히 제한하여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고, 모든 노동자가 조합원으로서 1인 1표의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하여 회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공영의 형제주의 정치를 기업 구조 안에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한 부서가 경영 위기에 처하면 해고하는 대신 다른 부서로 재배치하는 눈물겨운 연대를 실천합니다.
몬드라곤은 인간의 이타적 연대와 민주적 구조만으로도 탐욕스러운 글로벌 자본주의 시장을 압도할 수 있음을 입증한 놀라운 섭리적 승리입니다. 다만 이 거대한 구조적 틀 안에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의 심정을 불어넣어 세속화를 방어할 것인가는 이들 역시 고민해야 할 궁극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심정으로 세계를 하나로, 포콜라레의 공유경제
제도와 이념을 넘어선 가장 강력한 영적 경제적 연대가 바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가톨릭 평신도 운동 포콜라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끼아라 루빅에 의해 창설된 이 운동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인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를 궁극의 목표로 삼습니다.
이들은 국경과 종교의 벽을 넘어 형제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공의의 영성을 폭발시켰습니다. 특히 1991년 빈부격차의 참상을 목격한 끼아라 루빅은 기업가들에게 이윤의 3분의 1은 빈곤층 구제에, 3분의 1은 인간을 위하는 문화 양성에, 나머지 3분의 1만을 기업 재투자에 사용하자는 공유경제를 제창했습니다. 놀랍게도 전 세계 수백 개의 기업들이 이 뜻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기업 활동을 곧 참사랑의 실천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포콜라레의 성취는 제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공산주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하늘을 향한 심정이 폭발할 때 자발적인 공생의 기적이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음을 증명한 위대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실험을 넘어 천일국의 실체로
키부츠의 경제적 평등, 브루더호프의 영적 순결과 가정, 몬드라곤의 민주적 연대, 포콜라레의 심정적 공유경제는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창조이상을 더듬어 찾아온 피눈물 나는 섭리의 발자취이자 공생·공영·공의의 훌륭한 맹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위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은 여전히 전쟁과 분열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도의 혁신이나 윤리적 헌신만으로는 인간의 뼛속 깊이 각인된 사탄의 유전자, 즉 원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의 독뿌리를 근원적으로 도려내지 않는 한, 아무리 완벽한 제도도 철저한 이념도 언젠가는 타락성의 위협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따라서 이 모든 인류의 고귀한 실험들이 일시적인 성공이나 소수의 피난처로 끝나지 않고 전 우주적인 천일국으로 영원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류를 사탄의 핏줄에서 하늘의 핏줄로 근원적으로 수술해 주실 참부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참부모님이 열어주신 축복결혼을 통해 혈통을 전환한 참가정들이 몬드라곤처럼 공영의 일터를 가꾸고, 포콜라레처럼 부를 나누며, 브루더호프처럼 절대 순결의 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 나갈 때, 비로소 인류의 낡고 병든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하늘부모님이 직접 치리하시는 영원한 평화의 실체 세계가 이 지상 위에 웅장하게 건설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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