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Q 제2절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
Ⅰ.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의 개관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이미 세워진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믿음의 기대’
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탕감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된다는 원칙은 그에게 있어서도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中心人物)들이 달라졌으므로 그 인물들 자신도 또한 그러한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않고는 복귀섭리의 뜻을 계승할 수 없었으며, 또 그 섭리의 범위가 가정적인 것에서 민족적인 것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다음의 기록이 보이는 바와 같이, 이 기대의 조성을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의 내용이 전의 것에 비하여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 믿음의 기대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수로 말미암은 그 후손의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 기간이 끝난 다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福地)로 복귀하는 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모세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가 이 ‘믿음의 기대’를 어떻게 세웠는가 하는 것을 알기 전에 복귀섭리로 본 모세의 위치를 상고(詳考)하여 모세 이전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던 다른 인물들, 즉 아담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에 비하여 모세의 다른 점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그것은 첫째로, 모세는 하나님 대신의 신(神)으로 세워졌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기 4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선지자 아론 앞에서 신과 같이 되리라고 하셨고, 또 출애굽기 7장 1절에는 그를 바로에게 있어 신이 되게 하셨다고 하였다.
둘째로, 모세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의자(模擬者)였었다.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모세를 아론과 바로 앞에 신이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육신을 쓴 신은 예수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이 모세를 신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은 곧 모세를 출애급노정(出埃及路程)에 있어서 예수님의 모의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세는 예수님의 모의자로서 예수님이 걸으실 노정을 그대로 앞서 걸음으로써, 마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가실 길을 곧게 해야 했던 것과 같이(요 1:23) 모세도 예수님이 가실 길을 미리 개척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모세는 이 노정(路程)을 어떻게 걸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모세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였던 야곱의 후손으로서,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의 섭리역사를 담당한 중심인물일 뿐 아니라, 다음에 예수님이 오셔서 걸으셔야 할 야곱의 전형노정(典刑路程)을 형상적으로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모세는 야곱가정의 입애급노정(入埃及路程)에서 요셉이 세운 터전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요셉은 또 하나의 예수님의 모의자였다. 요셉은 야곱의 하늘편 처(妻)로 세워진 라헬이 낳은 아들로서, 야곱의 사탄편 처로 세워진 레아의 소생(所生)들의 동생이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아벨의 입장으로서, 가인의 입장에 있었던 그의 형들이 죽이려 했던 가운데서 겨우 죽음을 모면하고 상인에게 팔린 바 되어 먼저 애급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30세에 애급의 총리대신(總理大臣)이 된 후에, 그가 어렸을 때 하늘에서 몽시(夢示)로써 교시한 대로(창 37:5~11) 그의 형들과 그의 부모가 애급으로 찾아와 굴복한 섭리노정의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의 사탄 분립을 위한 애급고역노정(埃及苦役路程)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요셉의 이러한 노정은 장차 예수님이 사탄세계에 오셔서 고난의 길을 통하여 30세에 만왕의 왕으로 군림한 후에, 전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선조까지도 굴복시켜 가지고, 그들을 사탄세계로부터 분립하여 하늘편으로 복귀시킬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처럼 요셉의 전생애는 바로 예수님의 모의자(模擬者)로서의 걸음이었던 것이다.
한편 또 모세의 생장(生長)과 서거(逝去)도 예수님의 그 본보기노정이었다. 모세는 출생시부터 바로왕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으므로, 그 모친이 그를 숨겨서 키운 후에야 바로궁중에 들어가 원수들 가운데서 안전하게 성장하였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출생하자 헤롯왕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계셨었으므로, 그의 모친이 그를 데리고 애급에 들어가 숨겨 키운 후에야 헤롯왕의 통치권 내로 다시 돌아와 원수들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성장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죽은 후 그 시체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신 34:6) 예수님의 시체의 그러한 것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모세의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은 바로 그대로가 아래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걸으실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전형(典刑)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모세가 예수님의 모의자(模擬者)였다는 사실은 신명기 18장 18절 내지 19절에 하나님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예수님)를 세우실 것을 예언하시면서,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벌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도 역시 하나님이 모세를 시켜 장차 예수님이 행하실 것을 미리 보여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모세는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모세 이전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여 온 다른 중심인물들과는 다른 입장에 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아벨이나 노아나 아브라함과 같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40일 사탄 분립기대’만을 세우면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더 들어 보면 첫째, 모세는 아벨 노아 이삭 등 3차에 걸친 ‘상징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상징헌제’에 의한 섭리를 완료한 기대 위에 섰었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 시조가 타락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게 됨으로 말미암아,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말씀 대신의 조건물로 세운 것이 제물이었다. 그런데 모세 때에 이르러서는 제물을 조건물로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던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는 지나가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할 수 있는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로 들어왔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위한 ‘상징헌제’는 필요 없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아담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연장되어 감에 따라 사탄이 침범하여 연장되었던 그 섭리적인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노아가 방주(方舟)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는 ‘40일 사탄 분립기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400년 기간을 탕감복귀하여 ‘40일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선 후에야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상징헌제’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400년 간 고역하게 되었던 것도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탕감복귀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로 인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던 그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되어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는 ‘40일 사탄 분립기대’ 위에서 제물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서기만 하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2. 실체기대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에 있어서는 ‘가정적인 실체기대’를 세우는 섭리를 하셨었다. 그러나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에 들어와서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세우는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모세는 하나님 대신이었으므로(출 4:16, 출 7:1) 예수님의 입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는 부모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세는 예수님 앞에서 그의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선지자(先知者)로서 자녀의 입장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세워야 할 중심인물로서 아벨의 입장에도 설 수 있어야 하였다.
아벨은 아담 대신 부모의 입장에서 헌제(獻祭)를 하였기 때문에, 그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그는 아담이 세워야 할 ‘믿음의 기대’와 함께 ‘실체헌제(實體獻祭)’를 위한 아벨 자신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과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이때에 있어서 모세도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도 역시 부모의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게 되면 그와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실체헌제’를 하기 위한 아벨의 위치도 확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모세가 아벨의 위치를 확립한 후, 이스라엘 민족이 가인의 입장에서 모세를 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면, 거기에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3. 메시아를 위한 기대
모세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고,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면 그것이 바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그 기대 위에서 오시는 메시아로 말미암아 중생(重生)되어 원죄를 벗고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체를 이룸으로써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면 ‘ 완성실체’가 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Ⅱ.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모세가 사탄세계인 애급(埃及)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로써 인도하여 홍해(紅海)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노정은, 장차 예수님이 이 죄악세계(罪惡世界)에서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을 이적과 기사로 인도하여 이 죄악세계의 고해(苦海)를 건너고 생명의 물이 마른 사막을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창조본연의 에덴으로 복귀케 될 그 노정을 미리 보여 준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된 것과 같이,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모세노정과 예수노정과의 세밀한 대조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은 본절과 다음 절을 대조함으로써 소상히 밝혀질 것이다.
1.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 간을 애급에서 고역(苦役)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수로 초래된 민족적인 탕감기간(蕩減期間)은 끝나게 되었었다. 여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領導)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이 되기 위하여는, 민족적 탕감기간인 400년을 다시 개인적으로 탕감함으로써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모세는 이 목적과 함께 타락 전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워야 했던 40수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후편 제3장 제2절 Ⅳ) 사탄세계의 중심인 바로궁중에 들어가 40년을 지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남 모르게 그의 유모(乳母)로 세워진 어머니로부터 선민의식(選民意識)에 불타는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궁중생활 40년을 마친 후, 선민의 혈통에 대한 지조(志操)와 충절(忠節)을 변치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을 받기를 잠시 바로궁중에서 죄악의 낙(樂)을 누리는 것보다 기뻐하여 그 가운데서부터 뛰쳐나오게 되었던 것이다.(히 11:24~25). 이와 같이 모세는 바로궁중생활 40년으로써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였던 것이다.
(2) 실체기대
모세는 ‘믿음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동시에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게 되었었다. 이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부모의 입장인 동시에 자녀로서의 아벨의 입장에 있었던 모세에게 믿음으로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음으로써 선(善)을 번식하게 되었더라면, 그때에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 같이 모세를 따라 애급을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는 기간은 바로 그들이 이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이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모세는 자기의 동포가 애급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불타는 동포애(同胞愛)를 이기지 못하여 그 애급인을 쳐죽였던 것이나(출 2:12), 실상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참경(慘景)을 보시고(출 3:7) 울분을 느끼신 그 심정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세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모세를 따라서 사막을 횡단하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성공적으로 출발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사실을 결정짓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모세가 이와 같이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인 것은, 첫째로 천사장(天使長)이 인간 시조를 타락시켰고 또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사탄이 장자(長子)의 입장에서 인류 죄악사(罪惡史)를 이루어 나오고 있으므로, 하늘편에서 장자의 입장에 있는 사탄편을 쳐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모세로 하여금 바로궁중에 대한 미련을 끊고 다시는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서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의 애국심을 보여 줌으로써 그를 믿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하나님이 애급인의 장자와 그 가축의 맏것을 전부 쳐 버렸던 이유도 이러한 데 있었다.
모세의 이러한 행동을 목격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모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더 존경하고 더 믿고 모시며 따랐더라면, 그들은 모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홍해(紅海)를 건너거나 시내광야를 도는 일이 없이 바로 블레셋으로 가는 곧은 길을 통하여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노정은 야곱의 하란 21년노정을 탕감하는 21일노정이 되었을 것이었다.
출애굽기 13장 17절에는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보아서 하나님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블레셋 땅의 곧은 길로 통하게 하려 하셨던 것인데,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보지 못하고 말았고,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때는 제1차 때와 같이 그들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가나안 복귀의 도중에서 애급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여 홍해(紅海)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가도록 인도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다.
(3)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더라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이는 것을 보고 도리어 그를 오해하고 나쁘게 발설하였으므로, 바로는 이 소문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출 2:15). 이에 모세는 할 수 없이 바로의 눈을 피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 미디안광야로 도망하게 되었으므로 그 ‘실체기대’는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며,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은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