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꿈꿔온 이상 사회의 경제적 청사진
우리 인류는 오래 전부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이는 우리 안에 내재된 근원적인 욕구, 즉 진정으로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창조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본성의 발현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상 사회를 찾아 나서는 인류의 여정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 여정의 중요한 한 부분은 바로 '경제'입니다. 이상적인 사회에서 경제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기존의 경제체제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왔지만, 완전한 만족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경제는 개인의 사적 소유를 강조하며 생산력 증대에 기여했으나, 그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배제하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반면 사회주의(공산주의) 경제는 사회적 소유를 주장했지만, 역시 '사랑'의 요건이 결여된 채 왜곡된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 진정한 이상 사회의 경제적 측면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공생주의입니다. 공생주의는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소유'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공정하게 분배하며, 전체의 목적을 위해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지향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균등한 환경과 평등한 생활 조건을 주려 하는 것처럼, 모든 인류에게 그러한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는 근본적인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발견한 공생주의의 발자취
인류는 이상적인 경제체제를 향한 동경을 바탕으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 왔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은 법과 규제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 했으며, 신분 평등과 공유제를 표명하여 하루 6시간의 노동을 통해 모두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꿨습니다. 이처럼 공유제를 주장하는 사회가 게으름을 조장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오히려 그 사회에서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은 깊이 생각해볼 부분입니다.
로버트 오웬은 뉴레너크 공동체에서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행복한 환경을 제공했을 때, 오히려 최고의 생산성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실증했습니다. 이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사람이 된다'는 진리를 보여주며 노동자 복지의 개념을 탄생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킹슬리로 대표되는 기독교 사회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그림자 아래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던 노동자들에게 주목했습니다. 이들은 폭력이나 강제가 아닌 기독교 정신과 신앙을 통해 평등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노동조합의 발전과 기독교 민주정당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공생주의의 대표적인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기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민족, 인종, 성별, 신분을 넘어 만민을 평등하게 대하고 공동소유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독교가 기득권의 종교가 되어 돈과 권력을 대변하며 민중을 외면하게 되었을 때, 물질만능주의와 탐욕의 바람이 유럽 사회를 휩쓸었습니다. 이 시기에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구원의 목소리는 땅으로부터 울려 퍼졌고,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출현 배경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이상세계를 향한 열망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정치적 독재와 전체주의 국가를 만드는 왜곡된 형태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류의 실험과 시행착오들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소중한 교훈이 되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밝히는 공생주의의 빛
인류의 이상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은 현대 사회에도 공생주의 이념에 가까운 정책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구의 사회 복지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는 로버트 오웬이나 기독교 사회주의의 정신을 이어받아, 1932년 세계 대공황 당시 미국의 뉴딜 정책을 통해 국가 주도의 사회 보장 제도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은 폐허 속에서 경제 부흥을 이루는 동시에, 냉전 체제 하에서 공산 진영과의 체제 경쟁에 직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구 국가들은 사회주의 정책의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사회 복지 국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와 90년대 초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생주의적 사회 정책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노동 환경 개선, 노사 합의체, 노동이사제, 최저임금제 등을 통해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상생을 모색합니다. 둘째, 연금 제도, 공공 의료 보험 제도, 교육비 무상화, 임대 주택 및 공공 주택 공급 등 전 국민을 위한 사회 보장 제도를 폭넓게 실시합니다. 셋째, 노인 연금, 장애 연금, 생활 보호 제도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생활 보장 체제를 충실히 운영합니다. 최근에는 보편 복지로서 전 국민 기본 소득 제도 도입, 재난 상황에서의 재난 지원금, 저출산 대책으로서 아동 양육 지원금과 출산 지원금 등 복지 예산이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인류가 추구하는 공동의 번영을 향한 구체적인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공동소유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방임주의적 자유 자본주의의 팽창은 다시금 사회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금융 산업을 중심으로 팽창한 자유 자본주의는 노동의 가치보다 금융의 가치를, 노동자의 이익보다는 주주들의 이익만을 중시하여 급격한 부의 편중과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극도의 국가 이기주의로 이어져 브렉시트와 같은 공동체의 붕괴 현상,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에서의 혼란, 그리고 미중 갈등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국제적 갈등을 야기하며 현 세계 정세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공생주의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합니다. 공생주의는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중심한 공동소유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단지 인간 사회의 소유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맹금류인 독수리라 할지라도 창공의 일부를 독점하지 않으며, 호랑이 같은 맹수도 땅의 일부를 독점하지 않고, 흉폭한 상어라 할지라도 바다의 일부를 독점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본래 하나님과 인간들의 공동소유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탄소 중립 정책(RE100)과 같은 환경 보호 운동, 그리고 UN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s) 등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급격한 산업화와 자유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의 욕망 중심적인 개발과 독점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문제, 무분별한 자연 파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함께 번영하자'는 인류의 자각이며, 자연에 대한 공동소유 개념이 새롭게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공생주의 사회는 단순히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 스스로가 타락으로 인해 생겨난 자기 중심적인 욕망을 버리고,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소유의 개념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소유의 개념이 점차 퍼져나가는 것은 하늘 섭리의 진전을 보여주는 것이며, 인류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늘부모님의 창조 이상 세계 건설에 동참하고자 하는 본성의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 평준화와 환경 문제 해결의 열쇠는 바로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책이나 활동이 공생주의를 진전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인지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나부터 서로 공유하는 공생의 삶'을 실천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중심한 공동소유의 개념이 더욱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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