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Q 제3절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천사(天使)를 주관해야 할 아담(고전 6:3)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탄의 주관을 받아서 지옥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그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제1절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과 모세를 세워 장차 예수님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보기노정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象徵的)인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形象的)인 노정을 걸었으며, 예수님은 그 실체적(實體的)인 노정을 걸으셔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복시켜 나아갔던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하셔야 했던 것이다.
신명기 18장 18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고 하신 말씀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先知者)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모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보여 주신 본보기노정을 그대로 걷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상세한 것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서 논하였지만, 모세를 중심한 3차의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과 예수님을 중심한 3차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전체적인 윤곽을 비교 대조하면서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논하여 보기로 하자.
Ⅰ.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中心人物)은 세례 요한이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떠한 입장에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었던가?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가 석판(石板)을 깨뜨린 것과 또 반석(磐石)을 두 번 친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그를 중심한 유대민족이 불신(不信)으로 돌아가면 석판과 반석의 실체인 예수님의 몸도 칠 수 있다는 조건을 사탄에게 허락하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모세노정에서 논급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조건을 피하시게 되려면, 그의 강림(降臨)을 위한 터전을 닦아 나아가는 선민(選民)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聖殿)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불신의 길을 걷게 되어 장차 오실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켜 왔으므로, 이러한 조건을 막기 위하여 선지자(先知者) 엘리야가 와서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를 합하여 850명을 멸하는 등(왕상 18:19) 사탄 분립의 역사(役事)를 하고 승천하였던 것이다.(왕하 2:11). 그러나 엘리야의 전체적인 사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재림해야 했던 것이다(말 4:5). 이와 같이 엘리야가 다하지 못한 사탄 분립의 사명을 맡아 완수하고, 메시아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요 1:23) 엘리야로 왔던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다(마 11:14, 마 17:13).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埃及)에서 400년 동안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고역(苦役)을 당하여 오다가, 그들을 민족적으로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메시아를 맞게 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모세 한 분을 만나게 되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말라기 선지(先知) 이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년 간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페르시아, 헬라, 애급,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異邦)들에게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마침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 앞으로 그들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세례 요한을 만났던 것이다.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 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충효(忠孝)의 도를 배웠던 것과 같이,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石淸)을 먹으면서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하늘 대한 충효(忠孝)의 도를 세웠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祭司長)을 비롯한(요 1:19) 유대인들은 모두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눅 3:15). 세례 요한은 이와 같이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웠으므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2. 실체기대
세례 요한은 모세와 같은 입장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다(본장 제2절 Ⅰ 2). 따라서 세례 요한은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40년 간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지나고,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운 터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국가인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지만, 세례 요한을 중심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하(政權下)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그 제국(帝國)을 하늘 것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 요한을 중심한 기사이적(奇事異蹟)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잉태(孕胎)에 관한 천사의 놀라운 예고와, 또 그 부친이 이것을 믿지 않았을 때 벙어리가 되었던 기사, 그리고 그가 출생할 때 보여 주신 이적 등으로 말미암아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눅 1:65~66)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세례 요한의 출생시부터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石淸)으로 연명하면서 기도의 생활을 한 그의 빛나는 수도(修道)의 생애로 인하여, 제사장들과(요 1:19) 일반 유대인들이(눅 3:15) 그를 메시아로 오인할 정도로 그의 신망이 높았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궁중 40년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마치고 애급인(埃及人)을 살해하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믿고 따랐더라면, 그들은 홍해(紅海)를 건너거나 광야를 돌지 않고 또 석판(石板)이나 성막(聖幕)이나 법궤(法櫃)도 필요 없이 블레셋의 곧은 길을 통하여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기사 이적(奇事異蹟)으로써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 주신 세례 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를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요 1:19, 눅 3:15), 그들은 구약시대(舊約時代)를 청산하고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편 제4장 제2절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서도 그를 의심하는 데 이르렀고(마 11:3), 또 자기가 엘리야로 왔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부인하여(요 1:21)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는 입장에 서게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세례 요한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이것도 모세 때와 같이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Ⅱ.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1)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심
세례 요한은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때까지의 섭리역사상(攝理歷史上)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왔다 간 모든 중심인물들이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을 완전히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믿고 따르는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전체적인 섭리의 기대와 함께 예수님께 인계해 드린 후 믿음과 충성으로 그를 따르고 모셔야 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은 자기도 모르고 행한 일이었지만,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은(마 3:16)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쌓아 온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인계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세례 요한은 점점 예수님을 의심하고 배신하는데 이르렀으므로, 세례 요한을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던(눅 3:15) 유대인들은 자연히 예수님을 불신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2절). 따라서 세례 요한이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함으로써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禁食)을 하시면서 사탄을 분립하신 것은, 바로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로서 영광의 주(主)로 오셨으므로 원칙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고전 2:8). 그러나 그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던 세례 요한(요 1:23, 눅 1:75)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당했어야 할 고난을 예수님 자신이 당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 요한 대신으로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출발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자기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 16:20).
(2) 예수님의 광야 40일 금식기도와 3대 시험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禁食祈禱)와 3대 시험(三大試驗)에 대한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을 알아야겠다.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반석(磐石) 앞에 섰던 모세가 불신(不信)으로 돌아가 그것을 두 번 쳤기 때문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그 반석(고전 10:4)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후일 메시아로 오셔서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걸어야 할 예수님의 노정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오게 될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반석 되시는 예수님 앞에도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 따라서 이 행동은 메시아에 앞서 올 세례 요한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반석을 두 번 친 모세의 행동은, 바로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 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광야로 나아가 40일 금식과 3대 시험(三大試驗)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한 원인(遠因)이 되었다.
사실상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전편 제4장 제2절 Ⅲ) 그가 세웠던 ‘믿음의 기대’에는 사탄이 침범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근인(近因)이 되어 예수님은 몸소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광야에서의 40일 금식과 3대 시험을 겪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러면 사탄이 3대 시험을 하게 된 목적은 어디 있는가? 마태복음 4장 1절 내지 10절을 보면, 사탄은 예수님에게 돌을 보이면서 그것으로 떡이 되게 하라고 하였고, 또 그를 성전(聖殿) 꼭대기에 세우고 자기에게 경배하면 온 세상을 다 주겠다는 등 세 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서 그 개성의 완성, 자녀의 번식, 그리고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 등 세 가지의 축복(祝福)을 하셨다(창 1:28). 그러므로 인간이 이것을 완성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인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킴으로써 이 세 가지 축복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그 창조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이 세 가지의 축복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사탄은 축복 복귀의 길을 막기 위한 그 세 가지의 시험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3대 시험(三大試驗)을 어떻게 받으시고 어떻게 이기셨는가?
우리는 먼저 여기에서 사탄이 어떻게 되어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로 설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불신과 모세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이 예수님과 성신(聖神)을 상징하는 두 석판(石板)과 반석(磐石)을 취함으로써, 그는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밝혔다. 그런데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이르러, 사탄을 분립하여 메시아의 갈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자로 왔던 세례 요한(요 1:23)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모세 때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불신(不信)과 불순종(不順從)으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모세노정에서 예시(豫示)하신 대로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 시험(試驗)의 경위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예수님이 광야에서 밤낮 40일을 금식(禁食)하시고 난 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는 시험을 하였다.
그런데 모세가 광야에서 ‘40일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석판(石板)을 깨뜨리고 반석(磐石)을 두 번 쳤던 행동과 세례 요한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 돌을 사탄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기 위하여 예수님도 광야로 나아가 40일을 금식하여 사탄을 분립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이 돌을 찾기 위하여 광야에 나오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옛날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광야노정(曠野路程)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불신으로 흘러 돌을 사탄이 가지게 되었던 것과 같이, 이제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노정에 있는 예수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굶주린 가운데 있으니, 어서 불신으로 돌아가 그 돌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것으로 떡이나 되게 하여 주린 배를 채우면, 그 돌은 사탄이 영원히 가지겠다 하는 뜻이었다.
이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하셨다.
원래 사람은 두 가지의 영양소로써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즉 자연계로부터 섭취하는 영양소로써는 육신(肉身)이 살아가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는 영인체(靈人體)가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그 영인체들이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6장 48절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하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고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떡을 먹고 그 육신이 살아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서 온전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이 육신으로 화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지 않으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가 석판(石板)의 뿌리 되는 반석(磐石)을 두 번 침으로써 그 돌은 사탄의 소유로 돌아갔었다. 이렇게 사탄의 것이 되어진 그 돌은 바로 모세가 잃어버린 그 반석이었고 또 그 석판이었으므로, 그 돌은 결국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 돌을 그리스도로 상징하였고,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한 것을 보아서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탄의 첫째 시험에 응한 예수님의 대답은 결국 내가 지금 아무리 굶주린 가운데 있을지라도 육신(肉身)을 살리는 떡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너로부터 시험을 받고 있는 자리에서 승리하고 나서 온 인류의 영인체(靈人體)를 살려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이 되어야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시험을 받아 이김으로써 개성을 완성한 메시아의 입장을 찾아 세우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원리적인 입장에서 뜻을 대하는 예수님의 언행(言行)에 사탄은 패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첫번 시험에 승리하여 개성(個性)을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聖殿)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 4:6)고 하였다.
그런데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 하셨고, 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성도(聖徒)들을 일러 하나님의 성전이라고도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라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본성전(本聖殿)이요 성도들은 그 분성전(分聖殿)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공으로 오셨으므로 사탄도 그 격위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웠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한 것은, 주인공의 위치에서 떨어져 타락한 인간의 입장으로 돌아가면 자기가 예수님 대신으로 성전 주관자(主管者)의 위치를 점령하겠다는 뜻이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 4:7)고 대답하셨다.
원래 천사(天使)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된 것이므로 타락한 천사는 응당 예수님의 주관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천사가 예수님 대신으로 성전 주관자의 입장에 서려 하는 것은 비원리적(非原理的)인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비원리적인 행동으로, 원리적인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몸 되신 예수님을 시험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된다. 더구나 예수님은 제1차 시험에 승리하여 개성을 복귀한 실체성전(實體聖殿)으로서 성전의 주인공의 입장을 확립하셨기 때문에, 사탄의 시험을 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도 없으니 이제는 예수님 자신을 시험하지 말고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하여 둘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본성전이시고 신랑이시며 또한 인류의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을 분성전과 신부와 참자녀의 입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天下萬國)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고 시험하였다.
원래 아담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만물세계(萬物世界)에 대한 주인공의 자격을 상실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됨에 따라, 사탄이 아담의 대신으로 만물세계의 주관자로 서게 되었다(롬 8:20). 그런데 완성한 아담격으로 오신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5장 27절에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주관자이시었다. 따라서 사탄도 이러한 원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산 위로 인도하여 만물의 주인공의 입장에 세워 놓고, 태초에 아담이 사탄에게 굴복한 것과 같이 제2 아담 된 예수님도 사탄에게 굴복하라고 시험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대답하셨다.
천사(天使)는 원래 부리는 신(神)으로서(히 1:14),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敬拜)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타락한 천사인 사탄도 그에게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원리요, 따라서 사탄은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의 몸으로 나타난 예수님에게도 굴복하고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 원리라는 것으로 예수님은 대답하셨던 것이다. 더구나 예수님은 이미 두 번의 시험에 승리하여 하나님의 제1, 제2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기대(基臺)를 조성하셨으므로 그 기대 위에서 하나님의 제3축복을 복귀하여 만물세계를 주관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미 승리의 기대 위에 선 만물세계를 걸어 놓고는 더 이상 시험받을 여지가 없다는 뜻으로 원리적인 대답을 하셨다.
이렇듯 예수님은 셋째 시험에도 승리하시어,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다.
(3) 40일 금식과 3대 시험으로 사탄을 분립한 결과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인간이 정(正) / 분(分) / 합(合) 3단계의 과정을 거치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어야만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위기대를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도 역시 3단계까지 연장되어 내려오면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 가지고, 상실되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코자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3단계의 시험에 승리하여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우셨다. 이것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 3단계로 연장하시면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로써 찾으시려 했던, 다음과 같은 모든 조건들을 일시에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즉 첫째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셨으므로, 그때까지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찾아 세우려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즉 가인 아벨의 헌제,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헌제,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 등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아담 이후 4천년 간의 종적인 역사 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中心人物)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모든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하시었다. 즉 노아의 심판 40일, 모세의 3차의 40년 기간과 2차의 40일 금식, 정탐 40일, 이스라엘의 광야노정 40년, 그리고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애급고역 400년, 그리고 그 후 예수님 때까지에 있어졌던 모든 40수의 기간을 전부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입장에 서게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이루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헌제(獻祭)를 이룬 실체시요, 또한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와 반석(磐石)과 성전(聖殿)의 실체로 설 수 있게 되셨던 것이다.
2. 실체기대
예수님은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서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셨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가 미디안광야에서 40년간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지남으로써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탕감복귀한 입장에 서게 되셨던 것이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3대 기적(三大奇蹟)과 10재앙(十災殃)으로 그의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런데 그 후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무위(無爲)로 돌아간 애급에서의 3대 기적과 10재앙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석판·성막·법궤의 3대 은사와 십계명(十誡命)을 세우는 것으로서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는 것은 이미 모세노정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석판·성막·법궤의 3대 은사와 십계명의 실체이시기 때문에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예수님 자신이 말씀과 기사 이적(奇事異蹟)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가인의 입장에 있었던 유대민족이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세례 요한의 사명을 가지고 아벨의 입장에 서 있는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르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실체기대(實體基臺)’를 복귀하게 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세례 요한의 입장으로부터 메시아로 서게 되고, 온 인류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아(롬 11:17) 중생(重生)되어 원죄를 벗고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룸으로써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여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3.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세례 요한의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몸소 광야 40일의 고난을 당하시면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앞서 논술한 바 3대 시험(三大試驗)에서 예수님에게 패배한 사탄은 예수님 앞을 얼마 동안 떠났다고 하였다(눅 4:13). 사탄이 얼마 동안 떠났다는 말은, 아주 떠난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과연 사탄은 불신으로 돌아간 제사장(祭司長)과 교법사(敎法師) 등을 중심한 유대민족, 특히 예수님을 판 제자 가룟 유다를 통하여 다시 예수님 앞에 대립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섭리를 위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어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