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시대를 넘어, 새로운 이상을 꿈꾸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더 나은 삶과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해 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지옥과 같은 현실에 놓여 있으며, 국가 간 전쟁과 갈등, 개인 간의 격차로 인한 분열과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인류의 역사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현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세계, 즉 선의 목적이 온전히 이루어진 천국과 같은 이상 사회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의 여러 측면 중, 특히 이상 사회의 정치적 형태를 다루는 공영주의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공영주의는 자본주의의 정치 이념인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미래 사회의 정치 특성을 제안하는 개념입니다. 인류의 정치 형태는 크게 왕정과 민주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왕정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반면, 민주정은 실질적으로 그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약 2~300년 전부터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등장한 민주주의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본질적인 목적을 가집니다. 그러나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요원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왔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부의 격차와 편재를 초래하여 대다수 국민에게 경제적 불평등과 부자유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다수의 인민의 자유와 인권이 짓밟히는 비극적인 사례도 있었습니다. 역사상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나, 인민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공산 국가들의 일당 독재 탄압, 심지어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몇몇 기득권과 권력자를 위한 정치가 자행되는 현실은 민주주의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질문하게 합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지배해온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고, 정치가들은 정파적 이권을 우선시하면서 수많은 부정과 부패, 범죄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심오한 이해는 민주주의가 사탄편의 독재를 없애고 새로운 시대, 즉 이상적인 주권을 민의에 의해 복귀시키려는 최종적인 섭리에서 나온 중요한 단계임을 강조합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각자가 자유롭게 신을 찾아갈 수 있는 기독교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구시대 종교의 과실을 극복하고 인간의 개성과 자유, 권리를 존중하며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신적 가치관의 절대 기준을 상실하고 이기주의적 민주주의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주인 되는 정치, 공영주의의 새로운 지평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이상적인 정치체제, 공영주의는 어떤 모습일까요? 공영주의는 공동정치(共同政治)에 관한 이론으로, 다 함께 정치에 참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대의 민주주의와 유사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집니다. 첫째, 대의원 선거에 있어서 입후보자들의 관계는 단순히 경쟁하는 라이벌이 아니라, 참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가족적 형제자매 관계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참된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입장에서 서로를 대합니다. 둘째, 입후보자들은 자의에 의해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웃들의 천거에 의해 출마합니다. 이는 개인의 욕심이 아닌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선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투표 방식 또한 오늘날의 선거와는 다릅니다. 엄숙한 기도와 의식이 수반되는 추첨 방식으로 치러지는데, 이는 단순히 다수의 의견을 모으는 것을 넘어 하늘의 뜻과 공동체의 염원이 함께하는 신성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공영주의의 공동정치는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이상적인 왕국의 정치로서, 참사랑을 중심한 공동 참여의 정치입니다. 즉, 인류의 참된 부모를 중심하고 만인이 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은 형제자매의 입장에서 함께 정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정치는 엄격히 말해 민주주의 정치가 아니라, 최고의 이상적 가치와 공동의 부모를 중심한 '형제주의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형제를 위한, 형제에 의한, 형제의 정치를 지향합니다.
국경을 넘어, 인류 한 가족을 만드는 여정
이러한 형제주의 정치, 공영주의의 실현을 위해 이상적인 사회를 주창하는 이들은 국경 없는 세계를 꿈꾸고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어디에도 국경이 없다"는 것은 이상 사회의 핵심 원리이며, 이는 종교와 인종, 이념과 국가의 벽을 넘어 하나 되는 세계 평화를 지향합니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원수를 넘어선 인류 한 가족을 실현하기 위한 광범위한 캠페인들이 전개되어 왔습니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인류에게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안겨주었으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제연맹,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설립되어 국제적인 갈등 해소에 힘써왔습니다. 특히 양대 전장의 주무대였던 유럽에서는 EU를 결성하여 지역 공동체를 형성했고, 아세안, 남미 공동체, 아프리카 연합 등 다양한 국가 연합과 지역 공동체가 협력과 갈등 해소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 또한 자국 이익 우선주의라는 한계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유엔의 갱신과 더불어 새로운 차원에서 평화 이상 세계 왕국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우주적 차원의 이상적인 국제 연합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는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모격이 되는 '평화 유엔'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기구에 대한 비전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전 세계가 형제자매로서 잘 살아가기 위한 '기술 평준화' 노력이 이어져 왔으며, 역사상 가장 많은 박해를 받아온 아프리카 대륙의 아픈 역사를 해원하고 축복하며 서로 협력하여 잘살아갈 수 있도록 아프리카 연합을 통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연합, 신통일한국, 그리고 궁극적으로 신통일세계의 안착을 통해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 세계'를 실현하려는 비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념적인 면에서도 좌익과 우익을 하나로 품고, 가인과 아벨을 하나로 만드는 두익 사상(頭翼思想)과 같은 새로운 철학을 주창하며 냉전 종식과 남북 평화 무드를 이끌어내는 등, 이 모든 것이 공영주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되고 있습니다.
조화를 통한 새로운 정치의 원리: 삼권분립의 재해석
마지막으로 공영주의에 있어서 공동정치와 오늘날의 삼권분립의 관계를 살펴볼까요? 민주주의 정치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이루어진 삼권분립을 골간으로 합니다. 공영주의의 공동정치 또한 삼권분립의 개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기능과 원리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각 기관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반면, 공영주의에서는 국가의 세 권한이 마치 인체의 폐장, 심장, 위장과 같이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지향합니다. 즉, 두뇌의 명령이 각 장기에 전달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하듯이, 참사랑의 근원적인 주체의 뜻을 일정한 전달 기관을 통하여 전달받아 원활하게 협조하는 것이 본연의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공영주의는 '이상적인 부모를 모시고 만인이 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은 형제자매의 입장에서 서서 공동으로 참여하는 정치'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 온 다양한 정치 형태들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개념의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국가'나 '왕권'과 같은 개념이 이상적인 사회에서 말하는 본연의 개념과 반드시 같지 않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들이 만들어갈 이상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더욱 깊이 있고 구체적인 연구와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상 사회의 꿈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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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낡은 시대를 넘어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더 나은 삶과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해 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지옥과 같은 현실에 놓여 있으며, 국가 간 전쟁과 갈등, 개인 간의 격차로 인한 분열과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인류의 역사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현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세계, 즉 선의 목적이 온전히 이루어진 천국과 같은 이상 사회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의 여러 측면 중, 특히 이상 사회의 정치적 형태를 다루는 공영주의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공영주의는 자본주의의 정치 이념인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미래 사회의 정치 특성을 제안하는 개념입니다. 인류의 정치 형태는 크게 왕정과 민주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왕정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반면, 민주정은 실질적으로 그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약 이삼백 년 전부터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등장한 민주주의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본질적인 목적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요원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왔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부의 격차와 편재를 초래하여 대다수 국민에게 경제적 불평등과 부자유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다수의 인민의 자유와 인권이 짓밟히는 비극적인 사례도 있었습니다. 역사상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나, 인민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공산 국가들의 일당 독재 탄압, 심지어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몇몇 기득권과 권력자를 위한 정치가 자행되는 현실은 민주주의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질문하게 합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지배해온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고, 정치가들은 정파적 이권을 우선시하면서 수많은 부정과 부패, 범죄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심오한 이해는 민주주의가 사탄편의 독재를 없애고 새로운 시대, 즉 이상적인 주권을 민의에 의해 복귀시키려는 최종적인 섭리에서 나온 중요한 단계임을 강조합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각자가 자유롭게 신을 찾아갈 수 있는 기독교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구시대 종교의 과실을 극복하고 인간의 개성과 자유, 권리를 존중하며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신적 가치관의 절대 기준을 상실하고 이기주의적 민주주의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이상적인 정치체제, 공영주의는 어떤 모습일까요? 모두가 주인 되는 정치, 공영주의의 새로운 지평에 대해 알아봅시다.
공영주의는 공동정치에 관한 이론으로, 다 함께 정치에 참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대의 민주주의와 유사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집니다. 첫째, 대의원 선거에 있어서 입후보자들의 관계는 단순히 경쟁하는 라이벌이 아니라, 참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가족적 형제자매 관계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참된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입장에서 서로를 대합니다. 둘째, 입후보자들은 자의에 의해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웃들의 천거에 의해 출마합니다. 이는 개인의 욕심이 아닌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선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투표 방식 또한 오늘날의 선거와는 다릅니다. 엄숙한 기도와 의식이 수반되는 추첨 방식으로 치러지는데, 이는 단순히 다수의 의견을 모으는 것을 넘어 하늘의 뜻과 공동체의 염원이 함께하는 신성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공영주의의 공동정치는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이상적인 왕국의 정치로서, 참사랑을 중심한 공동 참여의 정치입니다. 즉, 인류의 참된 부모를 중심하고 만인이 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은 형제자매의 입장에서 함께 정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정치는 엄격히 말해 민주주의 정치가 아니라, 최고의 이상적 가치와 공동의 부모를 중심한 형제주의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형제를 위한, 형제에 의한, 형제의 정치를 지향합니다.
다음으로 국경을 넘어 인류 한 가족을 만드는 여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형제주의 정치, 공영주의의 실현을 위해 이상적인 사회를 주창하는 이들은 국경 없는 세계를 꿈꾸고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어디에도 국경이 없다는 것은 이상 사회의 핵심 원리이며, 이는 종교와 인종, 이념과 국가의 벽을 넘어 하나 되는 세계 평화를 지향합니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원수를 넘어선 인류 한 가족을 실현하기 위한 광범위한 캠페인들이 전개되어 왔습니다.
이십 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인류에게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안겨주었으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제연맹, 국제연합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설립되어 국제적인 갈등 해소에 힘써왔습니다. 특히 양대 전장의 주무대였던 유럽에서는 유럽연합을 결성하여 지역 공동체를 형성했고, 아세안, 남미 공동체, 아프리카 연합 등 다양한 국가 연합과 지역 공동체가 협력과 갈등 해소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 또한 자국 이익 우선주의라는 한계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유엔의 갱신과 더불어 새로운 차원에서 평화 이상 세계 왕국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우주적 차원의 이상적인 국제 연합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는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모격이 되는 평화 유엔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기구에 대한 비전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전 세계가 형제자매로서 잘 살아가기 위한 기술 평준화 노력이 이어져 왔으며, 역사상 가장 많은 박해를 받아온 아프리카 대륙의 아픈 역사를 해원하고 축복하며 서로 협력하여 잘살아갈 수 있도록 아프리카 연합을 통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연합, 신통일한국, 그리고 궁극적으로 신통일세계의 안착을 통해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 세계를 실현하려는 비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념적인 면에서도 좌익과 우익을 하나로 품고, 가인과 아벨을 하나로 만드는 두익 사상과 같은 새로운 철학을 주창하며 냉전 종식과 남북 평화 무드를 이끌어내는 등, 이 모든 것이 공영주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영주의에 있어서 공동정치와 오늘날의 삼권분립의 관계를 살펴보고, 조화를 통한 새로운 정치의 원리로서 삼권분립을 재해석해보겠습니다.
민주주의 정치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이루어진 삼권분립을 골간으로 합니다. 공영주의의 공동정치 또한 삼권분립의 개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기능과 원리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각 기관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반면, 공영주의에서는 국가의 세 권한이 마치 인체의 폐장, 심장, 위장과 같이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지향합니다. 즉, 두뇌의 명령이 각 장기에 전달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하듯이, 참사랑의 근원적인 주체의 뜻을 일정한 전달 기관을 통하여 전달받아 원활하게 협조하는 것이 본연의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공영주의는 이상적인 부모를 모시고 만인이 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은 형제자매의 입장에서 서서 공동으로 참여하는 정치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 온 다양한 정치 형태들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개념의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국가나 왕권과 같은 개념이 이상적인 사회에서 말하는 본연의 개념과 반드시 같지 않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들이 만들어갈 이상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더욱 깊이 있고 구체적인 연구와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상 사회의 꿈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은 이상적인 정치체제 공영주의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