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민주주의적 자유를 향한 갈망과 사회주의적 생활체제를 요구하는 본연의 지향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신이 바라시는 지상천국의 모형인 공생·공영·공의주의와 같은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게 합니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이러한 세상을 상상하고, 또 수많은 시도를 통해 구현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토마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 역시 그러한 염원이 담긴 인류의 소중한 도전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오랜 꿈, 지상천국을 향한 여정

16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던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 시대의 대법원장이자 당대의 위대한 인문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왕의 뜻에 따라 종교가 분열되는 것을 염려하여 결국 신념을 지키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친구 에라스무스는 그를 “눈보다 희고 순결한 영혼을 가졌다”고 애도했고, 훗날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이처럼 이상을 향한 숭고한 정신을 가졌던 토마스 모어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처참한 현실 속에서 누구보다 깊이 고뇌하며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플라톤의 이상국가론부터 아퀴나스의 신국론 등 수많은 이상사회의 형태를 이야기하며 지상천국을 꿈꿔왔으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그 계보를 잇는 중요한 발자취가 됩니다.

'양이 사람을 먹는' 시대, 유토피아가 던진 질문

토마스 모어가 살았던 16세기는 영국 사회가 극심한 혼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양모 산업이 번창하며 양모 가격이 치솟자, 귀족들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농지를 양을 키우는 목초지로 바꾸는 '인클로저 운동'을 벌였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농민들은 길거리로 내몰려 걸인이 되거나 굶주림에 허덕였고, 심지어 도둑질을 하다가 교수형에 처해지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중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무역과 초기 산업 발전은 영국의 부를 증대시켰지만, 그 혜택은 극소수 부유한 귀족에게만 돌아갔고 대다수 백성은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국가는 백성의 편이 아닌 귀족의 편에 서서 그들의 탐욕을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농촌은 붕괴되고 곡물 가격은 폭등하며 실업자는 늘어나는 악순환 속에서, 토마스 모어는 이러한 영국의 처참한 상황을 ‘유토피아’ 1부에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유토피아'라는 이상 사회를 제시했던 것입니다.

사유재산 없는 이상사회, 유토피아의 빛과 그림자

토마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처럼,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완벽한 사회를 그렸습니다. 2부에서 가상 인물 라파엘을 통해 소개되는 유토피아는 단순히 공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기반을 둔 현실적인 정치 사상이었습니다. 유토피아는 기독교적 지상 낙원보다는 법과 규제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제한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신분의 평등을 보장받으며, 하루 6시간만 일하고 공무원이나 지식인도 노동을 면제받지 않습니다. 정치는 대의민주주의 방식을 택하고, 가장 파격적인 것은 사유재산이 철폐된 공유제를 표방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사유재산이 공공의 선을 저해하고 인간 사회의 평등을 가로막는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법과 규제를 어긴 이들에게는 징벌로서의 노예제가 적용되어 모든 시민이 법과 규칙을 지키도록 강제했습니다. 또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며 대부분의 주민이 신과 영혼의 불멸을 믿는 사회였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 대해 '공산주의는 결국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고 인센티브를 없애는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유토피아에서는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그림 속에서도 인간의 본연적인 자유와 욕망을 전적으로 배제한 체제는 훗날 전체주의 사회의 그림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꿈은 현실이 되는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공생의 지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유럽 사상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 이후 수많은 사상가와 종교가, 혁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330년 후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과 400년 후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 또한 또 다른 유토피아 건설의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 사회를 향한 도전들은 종종 '디스토피아'라는 반대 개념을 낳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욕망이 과도하게 배제된 체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문학 작품에서 그려지듯, 전체주의 사회로 변질되기 쉬웠고, 실제로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은 결국 디스토피아로 막을 내렸습니다.

과연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만 남을까요? 인류는 이러한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꿈을 끊임없이 꾸어왔고, 다양한 형태의 이상 사회를 만들기 위한 크고 작은 도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에 의해 만들어 가는 세계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나라'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넘어,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 지상천국이 어떤 구체적인 국가의 형태와 정치, 경제, 사회 체제를 가져야 할지 다방면에서 논의하고 설계를 시작해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 이상 사회에 대한 수많은 도전을 살피고, 그 지혜를 모아 실체로서의 이상 사회를 현실로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새로운 도전과 진화가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