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20세기를 지배한 두 거대한 이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극심한 빈부격차와 공산주의가 초래한 획일적 국유화는 모두 인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두 체제가 공통적으로 범한 가장 근본적인 오류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만물의 진정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는 만물이 온전히 개인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무한한 소유욕과 독점을 정당화했습니다. 반면 공산주의는 모든 것이 국가와 당의 소유라며 폭력적으로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하지만 통일원리의 창조관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자원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창조주이신 하늘부모님께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절대적 소유주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참사랑으로 가꾸고 관리하는 청지기로 창조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사랑하여 풍요로운 집을 마련했는데, 한 자녀가 힘이 세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독점하고 다른 형제들을 내몬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타락한 이기심으로 만물을 독점하고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 소유권의 왜곡이야말로 인류가 겪는 모든 경제적 불평등과 비극의 가장 깊은 뿌리입니다.

참사랑에 기초한 공생 경제의 원리

참부모님께서 제시하신 신통일세계의 경제 모델인 공생주의는 이 소유권 문제를 차가운 법 제도가 아닌 뜨거운 심정으로 풀어냅니다. 공생주의는 공산주의처럼 개인의 사유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폭력적 체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창의성과 노력에 따른 정당한 소유는 인정하되, 그 부를 축적하는 목적과 사용하는 동기가 하늘부모님의 뜻과 형제애에 맞추어지는 형제주의 경제를 의미합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소유의 관념이 타락의 기원이며, 하나님의 참사랑 안에서는 네 것과 내 것의 경계가 무너진다고 하셨습니다. 참사랑으로 하나 된 가정에서는 부모의 것이 자식의 것이고, 자식의 것이 부모의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는 그 만물을 형제들을 위해 사랑으로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남보다 더 많은 재물과 뛰어난 기술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나 혼자 잘살라는 뜻이 아니라 그 능력을 발휘해 가난한 형제들을 돕고 섬기라는 하늘의 축복이자 책임입니다. 핏줄로 연결된 참된 부모와 자식 간에는 내 지갑과 네 지갑의 구분이 무의미하듯, 하나님을 중심 삼은 참가정의 심정이 사회 전체로 확대되면 사람들은 법의 강제 없이도 자발적으로 부를 나누게 됩니다. 이것이 참사랑에 바탕을 둔 자본의 사유와 사용의 공유라는 공생 경제의 핵심 원리입니다.

기술 평준화를 통한 전 지구적 공생 실현

공생 경제가 일국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실현되기 위해 참부모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역설하신 방안 중 하나가 바로 기술의 평준화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의 거대 자본과 다국적 기업들은 첨단 기술과 배타적인 특허권을 무기로 개발도상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막대한 이윤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인류를 구원하는 도구가 아니라 소수를 위해 다수를 착취하는 무기로 전락한 것입니다.

신통일세계에서 과학 기술은 인류 전체의 무지를 깨우치고 절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하늘이 내려주신 공적인 선물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독일의 앞선 기계 기술을 일본이 받아들이고, 이를 다시 한국과 세계의 개발도상국에 조건 없이 전수하여 전 지구촌이 함께 잘사는 기술 평준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창하셨습니다. 기술의 이기적인 독점을 풀고 지식과 산업 인프라를 형제의 나라들과 아낌없이 공유하여, 지구촌 어디서나 굶주리는 자식 없이 모두가 균등하고 풍요로운 생활 수준을 누리게 하는 것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향해 마땅히 베풀어야 할 가장 거룩한 참사랑의 실천입니다.

바다와 국경을 넘은 공생 경제의 실천

참부모님께서는 이 공생의 비전을 단순한 이론으로만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일생을 바쳐 전 세계 현장으로 달려가 실체적인 모델을 피와 땀방울로 보여주셨습니다. 장차 닥쳐올 인류의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차디찬 알래스카 코디악의 거친 바다와 남미 판타날의 오지를 직접 개척하시며 거대한 해양 섭리를 전개하셨고, 그곳에서 얻은 해양 기술과 자본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민들을 구호하는데 아낌없이 쏟아부으셨습니다.

또한 이기적인 국가 간의 닫힌 국경을 허물고 전 인류를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으로 묶어내기 위해 국제평화고속도로와 한일해저터널, 베링해협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 제창하셨습니다. 물자와 사람, 그리고 기술이 대동맥의 피처럼 자유롭게 오가는 길을 뚫어, 지구상의 부가 선진국 한 곳에만 고여 썩지 않고 전 세계의 굶주리는 심장부로 힘차게 흐르게 하려는 위대한 공생의 글로벌 인프라 건설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시작되는 위하여 사는 경제학

지구촌을 아우르는 이 공생주의는 결국 우리 각자의 평범한 일상 속 지갑에서부터 그 위대한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내가 오늘 땀 흘려 일하고 돈을 버는 목적이 단순히 나와 내 가족만의 안락함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타락한 자본주의의 이기적인 굴레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 내가 직장에서 헌신하고 기업을 경영하며 월급을 모으는 궁극적인 목적이 가난한 이웃을 이롭게 하고 하늘부모님의 뜻을 이 어두운 세상에 펼치기 위함이라면, 나의 세속적인 경제활동은 그 순간 거룩한 예배이자 공생 경제의 위대한 실천으로 승화됩니다.

참부모님께서는 먹고 남아서 주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배고프고 턱없이 부족할 때, 내 입에 들어갈 몫을 기꺼이 덜어 가난한 형제에게 내어주는 것만이 진짜 참사랑입니다. 신통일세계의 경제는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위하여 사는 삶을 제1의 절대 법칙으로 삼습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이기심이라는 암 덩어리를 도려낸 자리에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온전히 채워 넣을 때, 인류는 비로소 돈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만물의 참된 주인이자 주관자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숭고한 참사랑과 공생의 경제적 토대 위에서만이 비로소 다툼과 억압이 없는 평화로운 정치, 즉 공영의 정치가 활짝 꽃피울 수 있습니다. 공생 경제는 단순히 경제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의 심정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위대한 혁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