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투쟁으로 얼룩진 현대 민주주의의 그늘
절대 군주제와 독재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민주주의는 인류 정치사에서 가장 큰 진보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숙했다고 평가받는 현대 민주주의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형태의 투쟁과 분열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대의 선거는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화합의 장이 아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헐뜯고 짓밟는 패권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51%의 다수가 49%의 소수를 무시하고 권력과 이권을 독점하는 다수의 횡포를 낳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념과 지역으로 파벌을 나누고, 다음 선거 승리만을 위해 끊임없이 대립하며 보복극을 펼치는 현대 정치의 모습은, 인류가 본래 지향해야 할 화합과 공존의 가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절대적 가치의 중심을 잃어버린 민주주의는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욕을 극대화하는 세속적 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공영주의가 제시하는 형제주의 정치의 원리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인 공영주의는 만인이 함께 뜻을 모아 국정에 참여하는 공동정치의 형식을 띱니다. 외형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작동 원리와 근본적인 심정의 차원에서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공영 정치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투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 있습니다. 형제가 서로 다투어 권력을 쟁취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를 중심으로 형제자매가 화합하여 이웃을 위해 봉사할 대표를 기쁜 마음으로 추대하는 것이 참된 공영 정치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공영 정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차이를 통해 기존 민주주의와 구별됩니다. 첫째, 입후보자들의 관계성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권력을 다투는 정적이 아니라, 참사랑을 터로 하고 메시아를 인류의 참부모로 모시는 가족적 형제자매입니다. 따라서 상대를 짓밟아 내가 당선되려는 이기적인 투쟁심 자체가 원천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째, 출마의 동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입후보자들은 자신의 헛된 명예나 권력욕에 따라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일상과 조직 속에서 보여준 높은 덕망과 헌신적인 섬김을 지켜본 이웃들의 자발적이고 존경 어린 천거에 의해 후보로 겸허히 추대됩니다.
셋째, 투표와 추첨의 거룩한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선거는 타락한 인간의 다수결이나 여론몰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습니다. 투표 방식의 토대 위에,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맛디아를 선출할 때처럼 엄숙한 기도와 섭리적 의식이 수반되는 추첨 방식이 결합되어 최종적으로 치러집니다. 이는 인간적인 파벌 싸움과 선거 부정을 원천 차단하고, 최종 의사결정에 하늘의 뜻이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가장 겸허하고 신성한 참정권의 행사입니다.
천부주의를 중심한 인류 한 가족의 통치 체계
공영주의의 공동정치는 분열된 이익 집단들의 각축전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메시아 왕국의 정치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한 진정한 화합의 정치가 됩니다. 하나님을 실체적으로 대신하는 메시아를 참부모로 모시고, 만인은 그 부모의 참사랑을 핏줄로 이어받은 형제자매의 입장에서 국가와 세계를 화기애애하게 경영합니다.
부모 앞에서는 잘난 자식도 못난 자식도 모두 품어주어야 할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러한 공동정치는 인류의 참부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형제를 위한, 형제에 의한, 형제의 정치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좁은 의미의 세속적 민주주의를 훌쩍 뛰어넘어, 우주의 창조주인 하늘부모님을 진정한 부모로 모시는 천부주의를 중심한 완벽한 형제주의 정치로 승화됩니다.

일상 속에서 실현되는 공영의 원리
형제주의 정치의 비전은 비단 국가 차원의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인체의 위장과 심장이 뇌의 명령에 따라 온몸을 살리기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하듯,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조직 관리와 의사결정의 현장에서도 이 공영의 원리는 사위기대의 형태로 실체화되어야 합니다.
기업이나 조직의 관리를 위해 새로운 경영 지침을 세우는 워크숍을 준비하거나, 핵심적인 조직 프로젝트 과제를 기획하여 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부서 이기주의를 내세워 내 기획안만이 무조건 채택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거나, 상대방의 평가 자료를 깎아내려 나의 실적만을 돋보이게 하려 한다면 그것은 낡은 패권 정치의 축소판일 뿐입니다.
하지만 공영의 원리가 적용된 회의장에서는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워크숍 자료나 여러 프로젝트 제안서들을 평가할 때, 나의 승진과 실적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안건들이 조직 전체의 공적인 목적을 어떻게 조화롭게 실현할 것인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습니다.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가 아닌 한 식구로 여기며 그의 아이디어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부족한 점을 내 능력으로 보완하여, 그 융합된 최종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 개인의 공로가 아닌 조직 전체의 공영과 기쁨으로 돌리게 됩니다. 가장 높은 직급에 있으면서도 만인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리는 섬김의 리더십과, 이웃의 의견을 존중하고 융합하는 공영주의의 원리가 조직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때, 바로 그 회의실과 사무실이 가장 작은 실체적 천일국이 됩니다.
이기적 독점을 끝낸 경제적 토대와 파벌 투쟁을 마감한 형제주의 정치의 굳건한 기반 위에,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절대가치로 영원히 묶어줄 궁극의 정신문화가 필요합니다. 신통일세계 비전은 공생, 공영, 그리고 공의의 윤리라는 세 기둥 위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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